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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place 전농 - 경향신문 2019.11.08

[안녕, 둔촌 프로젝트 이인규가 만난 다른 집](1)가문의 유산을 잇는다

유일주택은 공용공간인 복도를
조경공간으로 꾸미고 의자와 조명,
콘센트가 있는 '모두의 거실'로 조성해
입주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유일목욕탕에서유일주택으로

 또 다른 가문의 유산이 자리 잡은 곳은 서울시립대학교 근처 전농동의 오래된 골목 안이었다. 사진으로만 봤던 새 건물이 동네를 훤하게 밝히고 있었다. 건축주의 딸 유정민씨는 부모님이 전농동에 자리 잡은 35년 전부터 온 동네가 다 아는목욕탕집 딸내미였다. 그만큼 목욕탕이 온 동네의 사랑방이던 시절이 있었다. 목욕탕 손님이 줄자 2000년대 들어 건물을 작은 원룸 형태로 나누어 세를 놓고 있었다. 벽돌로 된 굴뚝만이 이곳이 목욕탕이었다는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유씨는 건물을 새로 짓더라도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녹아 있는 목욕탕의 기억은 남겨놓고 싶었다. 그래서 새집도 아버지 성함의 앞 두 글자를 따서 지은유일목욕탕을 그대로 이어유일주택이라 이름 지었다. 건물 지하에는 예전 목욕탕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잇는 공간을 만들었다. 바로 입주민이 공유할 수 있는 ‘1인 목욕실을 만들어둔 것. 안에는 유일목욕탕 시절 사용했던 오래된 체중계가 그대로 놓여 있다. 부모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여실히 전해지는 공간이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공용공간인 복도를 ‘모두의 작은 거실’로 만든 것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레 만나던 예전 목욕탕의 공간 기억과 어딘가 닮아 있다. 시원하게 열린 복도에는 빛과 바람이 든다. 층마다 잘 가꾸어진 조경 공간을 마주 보고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고, 그 옆엔 조명과 콘센트도 마련되어 있어 ‘거실’이라는 말이 손색없다. 공용공간을 줄여서 이를 가구 전용면적에 포함시켰다면 0.5평 정도씩은 더 늘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는 유일주택의 주된 평면인 원룸과 1.5룸처럼 작은 주거 공간일수록 거주자의 삶이 확장될 수 있는 공용공간의 질을 높여 함께 공유하는 것이 전체적인 공간 경험뿐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집을 지을지 고민하면서 유정민씨가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똑같은 건 싫다’였다. 사람마다 성격도, 옷 스타일도 모두 다른데, 왜 다들 똑같은 공간에서 사는지 이상했다. 집은 사는 사람을 닮아 개성이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성 있는 건물을 만들자, “건물을 닮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입주자들이 먼저 ‘공간을 깨끗하게 쓰겠다’고 얘기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책하는 기분으로 늘 걸어 내려간다는 입주자도 있다. 플로리스트인 유씨와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 한 입주자가 각자 서로의 집 앞에 꽃을 걸고 그림을 그려서 붙여줬다는 이야기는 너무 낭만적이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설계 당시 건축가가 “지금은 없어서 그렇지, 이런 집이 있으면 이 집에 맞는 분들이 올 거예요”라는 예언 같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 유씨는 아직도 신기한 듯했다. 유씨는 앞으로도 이 집을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는 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라도 이 집에서 지냈던 시절을 소중하게 떠올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한 일일 것이다. 

■ 좋은 건축주가 좋은 집을 만든다

 최근에는 집 관련 콘텐츠가 많아져서 마음만 먹으면 좋은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덕에 좋은 집을 알아보는 눈도 많아졌다.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좋은 건물을 지어 오랫동안 잘 유지하겠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좋은 전례를 쌓으려 노력해온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 건축가들의 진취적인 작업은 실제로 시장에서의 호응으로 이어졌고, 이는 건물주가 바라는 경제적 선순환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일반 주거 영역으로 건축가들의 참여가 늘어나는 것은 그 공간에서 세 들어 사는 입주자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다. 고민해볼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언젠가 나와 잘 맞는 집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

 주택 시장을 넓게 조망하면좋은 건축주가 좋은 집을 만든다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위와 같은 선순환의 시작은 건축주가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 고민하는 단계에서 이미 좌우된다. 사실 일반인이 건물을 짓는 일은 평생 흔치 않은 경험이다. 당장 받아든 견적서의 금액과 수익률에 몰두한다면 시야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건물은 길게 봐야 한다. 더욱이 내 가족이 뿌리내리고 살던 터라면 더욱 길게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에서 배운최대의 수익외에도 우리는 부모님의 삶에서 배워온 소중한 가치들을 기억한다. 종교적 믿음, 타인에 대한 배려, 자연스레 어울려 사는 삶 같은 가치들. 새로 짓는 집을 통해 그런 가치들이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가문의 유산이자가풍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만나본 두 집의 이야기가 작은 울림이 되길 바란다.

thirdplace 전농(유일주택)